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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 교수,원저자 필사본 서문 역주
세계 첫 비판정본 예수회‘맞춤형 선교’교재
쿠플레가 지운 부분 복원
동서 교류의 역사는 깊다.유럽이 페르시아와 인도를 넘어 중국과 만난 문헌 기록만도 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5세기에 쓰인 중국 역사서‘후한서’는 서기 166년에 대진국(로마) 황제의 사절이 낙양에 도착해 영접을 받았다고 전한다.그러나 유럽인이 중국의 학문과 사유 체계,동양적 세계관과 깊이 있게 만난 것은 17세기 중반 한권의 책에서였다.
1687년 예수회 선교사인 필리프 쿠플레 신부가 동료들과 함께 중국 고전인 사서를 라틴어로 번역한‘중국인 철학자 공자’(이하 쿠플레 편집본)라는 책을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했다.쿠플레 편집본은‘서문‘공자의 생애‘대학‘중용‘논어‘중국 연대기’등 별개의 텍스트(책자) 6개를 한데 묶은 것이다.사서 중‘맹자’는 완역되지 않아 빠졌다.이 책은 지금도 17세기 동서 교류사의 가장 기본적인 문헌으로 권위를 누린다.
그런데 2014년에 놀라운 사실이 확인됐다.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같은 책의 필사본을 입수해 쿠플레 편집본과 대조해보니,책 전체의 원저자가 쿠플레가 아니라 프로스페로 인토르체타 신부였다.그뿐 아니다.쿠플레 편집본에서는 그보다 18년이나 앞서 라틴어로 쓰인 인토르체타 필사본 중‘공자 서문’의 상당 부분이 삭제되고 쿠플레가 덧붙인 글이 삽입됐다.여기에는 예수회 내부의 중국 전교 접근법과 중국학에 대한 시각 차이가 깔렸다.
안재원 교수가 최근 인토르체타의‘공자 서문’을 우리말로 옮기고 상세한 주해를 붙인‘중국인 철학자 공자 서문’을 내놨다.쿠플레가 지운 대목들은 볼드체로 표시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다.앞서‘인토르체타의 라틴어 중용’(2020,카지노 시즌 2 6화 다시 보기논형)을 시작으로,12년에 걸친 필사본 복원 작업의 두번째 결실이다.이전까지 장서 목록으로만 알려졌던 인토르체타 필사본을 현대의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주해를 붙인‘비판 정본’을 펴낸 것은 안재원 교수가 세계 최초다.
쿠플레 편집본이 라틴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도 2011년 프랑스 예수회 신부 티에리 메이나르의 영어 번역본이 유일하다.그러니까,카지노 시즌 2 6화 다시 보기17세기에 라틴어로 쓰인‘중국인 철학자 공자’의 번역본은 3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쿠플레 편집본의 영역본(메이나르본)과 인토르체타 필사본의 한국어판(안재원) 둘뿐이다.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안재원 교수를 만나 서양이 본‘중국인 철학자 공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자신을‘엑스페디티오’(expeditio)라고 일렀습니다.라틴어로‘원정대’라는 뜻인데,군사용어예요.중세 기독교도들이 이슬람이 정복한 예루살렘을 되찾겠다고 나선 십자군 원정과 똑같아요.현지에 뼈를 묻고 무덤 위에는 성당이 세워지길 바랐습니다.중국에 들어올 때부터 태도가 남달랐지요.”
이들이‘중국인 철학자 공자’를 집필한 배경에는‘역법 논쟁’과‘전례 논쟁’이 있었다.
예수회는 서양 천문학과 수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법(시헌력)을 제시하며 황실에 진출했다.그러나 중국 전통 역법을 지지하는 중국 지식인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실각과 복권을 반복했다.달력은 단순히 날짜 계산이 아니었다.일식·월식을 예측하고 천문 현상을 해석하는 능력은 천명을 받은 황제의 권위와 직결되는 정치적 상징이었다.서양 역법이 더 정확한 것으로 판정돼 중국이 새로운 역법을 수용한 것은 한참 뒤였다.
역법 논쟁이 예수회가 소개한 서양 역법과 청나라의 전통 역법이 맞붙은 것이었던 반면‘전례 논쟁’은 중국인들이 하늘과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예수회 내부의 논쟁이었다.
앞서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들이 모시는 하늘의‘상제’(上帝)가 본질상 서양 기독교 신앙의‘천주’(天主,하느님)와 같은 개념이라고 봤고,인토르체타도 이를 따랐다.현지 문화를 인정하고 맞춤형 전교를 하려는‘적응주의’전략이었다.그러나 니콜로 롱고르바디 등 다른 선교사들은‘상제’를‘하느님’으로 해석하는 건 견강부회라며,중국의 전례는 우상숭배나 기복 신앙이라고 주장했다.
예수회는 고도의 문명사회인 중국에 기독교 신앙을 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국의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그들이 중국 경전을 읽고 라틴어로 옮기기 시작한 이유다‘중국인 철학자 공자’는 그 결정판이다.안 교수는 “그중‘공자 서문’은 논어와 대학,중용을 모두 번역한 뒤 중국의 역사와 정치,종교,철학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마지막에 쓴‘해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쿠플레는 인토르체타가‘공자 서문’에 쓴 종교적 해석과 철학적 논의를 대부분 짙은 먹칠로 지워버렸다.대신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에게 바치는 헌정사를 채워넣었다.안 교수는 “쿠플레 편집본이 정치적 문헌으로 성격이 바뀌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당시 프랑스,스페인 같은 가톨릭 국가들은 절대왕정 시대였다‘태양왕’루이 14세는 절대군주의 표상이었고,예수회는 국왕의 정치적·재정적 후원이 절실했다.
안 교수는 “당시 유럽에서‘중국인 철학자 공자’(쿠플레 편집본)는 정치적으로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책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중국에선 사서를 보고 과거시험을 치른 신하들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니까 루이 14세도 중국 경전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데,쿠플레가‘중국인 철학자 공자’를 헌정사까지 바꿔서 가져다 바치고 예수회의 중국 전교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거죠.”
여기에 가톨릭 수도회 간의 경쟁도 한몫했다.“예수회는 1540년에 설립됐는데,당시 유럽에선 이미 도미니코회나 베네딕토회 같은 다른 수도회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어요.예수회는 끊임없이 유럽 밖으로 나가야 했지요.그런데 종교개혁 이후 절대왕정 시대에 로마 교황청은 힘이 약해졌고,예수회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이어 프랑스의 루이 14세한테 가서 듣기 좋은 말을 해준 겁니다.”
쿠플레가 인토르체타 필사본을 루이 14세 헌정사로 바꿔 쓴 일부 대목은 이렇다.
“대왕이시여,시나인(중국인)들은 그를 콘푸키우스(공자)라고 부릅니다.그는 최고의 현자이고,도덕과 정치의 사표이고 예언 자체입니다.(…) 공자는 그토록 갈망해왔던 대왕을 발견하고 대왕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할 것입니다.왜냐하면 저 뛰어난 공자도 (…) 자신의 서책에서 윤곽을 잡아놓았던 탁월한 황제를 선대의 군주들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 교수는 “쿠플레가 예찬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바로 역경의 겸괘(謙卦,䷎)에서‘높은 산(☶)’이‘땅(☷)’아래에 자리 잡은 형상,즉 이상적 군자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인토르체타 필사본의 헌정사는 특정 군주를 찬양하는 글이 아니었다.제목부터‘중국과 극동 지역에 전교를 희망하는 지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로,쿠플레 편집본과 전혀 다르다.“그리스도의 병사들에게” 중국에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무엇부터 읽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 떠날 채비를 하라”고 촉구한 선교 안내서였기 때문이다.
인토르체타는 선교사들에게 중국에 가면 불교와 도교에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유학을 공부하라고 권했다.논어,대학,중용을 차례로 읽고,역경(주역)으로 나아가야 중국인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공자 서문’의 마지막 부분은 주역의 64괘를 설명하고 그중 15번째 괘인‘겸’(謙)을 공자가 그린‘군자’(君子)의 이상적 덕목으로 제시한다.“높이 오를수록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법,온갖 종류의 오만,교만을 피해야 한다”는 겸양의 가르침이라는 해석이다.쿠플레는 그런‘군자’의 자리에 프랑스 통치자인 루이 14세를 등치하고 계몽 군주의 모범으로 추앙한 셈이다.
놀라운 것은 인토르체타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주역을 일종의 점술서가 아니라 중국인들이 세계 질서와 우주 만물의 원리를 설명하는 철학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이다.안 교수는 “그 사람들이 성리학을 집대성한‘성리대전’도 이미 공부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역경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성리학의‘성’(性)을 스토아 철학의‘나투라’(Natura)로 옮겼습니다.만물의 본성을‘나투라’로 보면 유학은 물리학,자연학과도 맥이 닿게 됩니다.” 이런 해석은 예수회 내부에서 성리학이 사실상‘유물론’이 아니냐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리’(理)는 라틴어‘라티오’(Ratio,이성)에 해당한다.
안 교수는 이번 역주서가‘중국인 철학자 공자 서문’의 비판 정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비판 정본은 “최초의 원문을 학술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판독하고,뒤에 나온 다른 출판본들과 대조해 차이의 배경과 의미를 밝혀 이후 연구의 초석이 된다”는 것이다.그는 애초 국제학술출판사 브릴(Brill)로부터 이번 책의 출판을 제안받았다며,머잖아 영역본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한국에서 복원한 텍스트가 세계 학계의 표준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 교수는 “인문학은 단순히 인문 교양이 아니라 문명 전체에 대한 학제적이고 종합적인 지식과 관점”이라며 “고전 문헌을 제대로 이해해야 문명의 뿌리와 계보를 알 수 있다”고 했다.이는 학문의 주체성과도 직결된다고도 했다.그가 대학에 고전문헌학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현재 서울대에는 고전 번역 전공이 대학원 협동과정 2년이지만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안 교수의 생각이다.학부에 학과를 신설하는 것은 입학 정원과 학과별 학생 수 때문에 쉽지 않지만,대학원 학과 신설은 총장의 명만으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외국의 대학은 어떨까?일본만 해도 도쿄대·교토대·도호쿠대·나고야대 등 4개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 서양고전학과가 있다.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같은 유럽 대학들도‘클래시컬 스터디스’(Classical Studies)와‘클래시컬 필롤로지’(classical philology),즉 고전(문헌)학에서 출발했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선 인문학계에서도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번역과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활발하다.안 교수도 디지털화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점 하나,기호 하나까지 그 의미를 읽고,서로 다른 판본을 비교해 계보를 밝히는 것은 디지털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은 주어진 데이터를 정보로 처리합니다.하지만 인간은 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텍스트로 이해합니다.여기에는 해석과 평가가 들어가죠.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텍스트를 음미하면서‘내 것’으로 만드는 체화가 일어납니다.정보 처리와 텍스트 이해는 차원이 다른 지적 활동입니다.”
그는 “텍스트를 읽어내고,구성과 서사를 만들고,지식으로 엮어내는 것은 학문적 기초와 관점,연구 기량,그리고 통찰력이 필요하다”며 “그건 디지털 기술로 되는 게 아니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